‘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https://blog.naver.com/mymei66/224031123628
올가을에는 가 볼 전시가 풍성하다. 긴 연휴 첫날, 친구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만났다. 로비에서 보니 캐비닛 공간이 새로 생겼고, 무라카미 전시 중이다. 오늘은 문을 닫았지만, 통창으로 내부가 다 보였다.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도 반갑다. 가고시안 갤러리란다. 세계적 갤러리들이 계속 오픈하는 것이, 일개 관객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이렇게 둘러볼 수 있으니.
11시 예약보다 일찍 도착해서 로비에서 한 바퀴 돌아보는데, 언제 와도 좋은 공간이다. 전시 제목이 유리창에 주황색으로 써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근사하다. 주황이 유행인가 테이트 모던 입구 간판도, 수원시립미술관도 주황색 테마였다. 요기서 친구가 사진도 찍어 주었다.
마크 브래드포드(1961~)는 모르던 작가였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호기심을 갖게 한다. 게다가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유명세(올해 프리즈 서울 최고가)와 작품세계도 흥미로웠다. 특히 작품 위를 관객이 걸을 수 있으며,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데, 물성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마주했던 그 광활한 공간이 마크 브래드포드의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사람들도, 나와 친구도 아름다운 바닥 위를 걷고 사진찍고 살펴보고 그랬다. 위치나 각도에 따라 프레임이 달라지고, 오래 바라보면 색의 조합이나 질감도 다르게 느껴진다. 어쩐지 매료된 공간은 슬프고도 찬란했다. 각종 종이들은 전단지 같은 도시의 부산물을 붙여서 제작했단다. 수많은 이야기가 그 안에서 담겨져 있고, 그것은 관객 개인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다음 공간에도 우리나라 단색화 느낌과 비슷한 종이를 활용한 작업들이 다양하게 이어진다. 종이를 오려 가장자리를 그을리거나, 콜라주하고 그 위에 페인팅하는 방법 등. 작품제목들도 흥미롭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서 모티프를 얻은 기차역 관련 작업 <기차 시간표>처럼 영화, 광고 문구, 노래 가사에서 가져온 제목들을 활용한다. <핑크 레이디>나 <타오르는 피노키오>, <나이아가라>. 작업 방식도 다양하고, 가지고 있는 계급이나 문화에 관한 이야기도 풍부한 작가다. 물론 사유과정을 스스로 잘 설명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품 소개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광활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대작들이고, 덕분에 작품이 충분히 돋보이는 것 같다. 언제 와도 좋은 이유다. 오늘은 사진 좋아하는 친구와 만나 사진도 많이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전시장을 돌다보니 그 어느때보다 풍성한 감상이었다. 수다는 점심 먹고 커피 마시러 가서도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