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역전 드라마 끝에 일본 자민당(LDP)의 새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는 일본 정치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다수당(자민당)의 총재=총리’가 되지만 국회의 선출절차를 거쳐야 한다.그러나 64세의 이 베테랑 정치인은 단순한 ‘유리 천장의 파괴자’를 넘어, 일본 정치를 극우 민족주의와 강력한 국방 중심으로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강경 보수 성향의 지도자로 평가된다.
다카이치의 집권은 자국내 경제 부양, 헌법 개정이라는 극우성향의 고 아베 신조 총리의 숙원 과제를 계승하며, 일본 정치의 우경화 궤도를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극우파 아베 신조의 충실한 후계자
뉴스 캐스터 출신인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오랜 기간 일본 정부의 핵심 요직을 거치며 고위급 행정 능력을 입증했다. 그녀는 총무대신(행정,지방자치,통신 등 담당 장관), 과학기술 담당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지정학적 경쟁국들로부터 핵심 기술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 경제안보 담당 장관을 지내며 강경한 대중국 노선(China hawk) 이미지를 굳혔다.
다카이치의 정치적 정체성은 암살된 고 아베 신조 총리의 비전과 철저히 연결되어 있다. 아베 전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그녀에게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으며, 다카이치는 스스로를 영국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에 투영하며 단호하고 보수적인 지도자상을 구축해왔다.
그녀의 이념적 닻은 민족주의 조직인 ‘일본회의(Nippon Kaigi)’ 가입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는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의 행위를 “자위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해왔으며 , 이는 이웃 국가들과의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사나에노믹스’와 평화 헌법 개정: 정책의 두 기둥
다카이치가 이끌 정부의 주요 정책은 아베의 유산을 계승하고 강경한 안보 태세를 구축하는 데 집중될 전망이다.
그녀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공격적인 지출과 양적 완화를 지속적으로 지지한다. 다카이치는 확장적인 재정 의제를 옹호하며,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환급성 세액 공제 프로그램 및 잠정 휘발유세 추가금 폐지 등을 제안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위기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 그녀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는 ‘일본국 헌법 제9조’를 개정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명시적으로 포기”하고 있는데 , 다카이치는 이 조항 개정을 통해 일본 자위대(군사력)의 지위를 합법화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후 평화 국가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인도-태평양 안보 구도에서 일본의 역할을 대폭 확대했다.
성 평등의 역설과 정치적 난제
다카이치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역사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극도의 보수주의를 표방한다. 그녀는 동성 결혼에 반대하며 , 부부가 결혼 후 다른 성씨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을 정도다. 그녀는 이러한 성 평등 개혁이 “가족 단위에 기반한 사회 구조를 파괴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분석가들은 그녀의 지도력이 여성의 권리나 성 평등 정책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가능성은 낮다고 경고한다.
총재 당선은 LDP의 보수적인 풀뿌리 당원들의 강력한 지지(결선 투표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후보를 185대 156표로 누름) 에 힘입은 결과이다. 그러나 그녀는 심각한 정치 자금 스캔들로 신뢰도가 추락하고,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상실하며 심하게 분열된 당을 물려받았다.
다카이치 총재는 헌법 개정이라는 이념적 목표를 밀어붙이는 동시에, 총리 지명을 받기 위해 연립 정부(공명당 외 야당 일부)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정치적 난제에 직면해 있다. 그녀는 당선 직후 “기쁘기보다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당 재건을 위해 워라밸을 포기하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정학적 도전: 역내 긴장 고조 위험
다카이치의 강경 노선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즉각적인 시험대에 올릴 전망이다.
한일 관계: 야스쿠니 참배 이력과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는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조시킬 위험이 높다. 그러나 북한, 중국, 러시아의 밀착이 심화되는 동북아 안보 정세 속에서 , 다카이치 역시 “한국과 협력하며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어 , 국익을 위한 실용 외교를 채택할 가능성도 동시에 제기된다.
미국 및 중국: 그녀는 미국과의 안보 동맹 강화를 지지하는 동시에 ,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 중심적인 무역 협상 방식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측면’이 있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바 있다. 그녀는 확고한 대중국 강경파로서 , 대만 해협 등 지역적 불안정 속에서 미일 동맹을 관리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시절 호스티스로 학비벌어
2004년 같은 자민당 의원 야마모토 다쿠와 결혼했으나 2017년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이혼한뒤 2021년 다시 재결합했다. 이때 남편인 야모토가 아내 성인 ‘다카이치’로 성을 바꿔 사용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녀는 젊은 시절 호스티스로 학비를 벌었고, 연애도 많이 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녀의 연애지론은 “남자는 반려동물이 아니면 안된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남편의 성도 자신의 성으로 바꾼 걸까? 두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다. 다만 남편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세자녀가 있다고 한다.
다카이치는 1993년 무소속으로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동기이자 강경우파 노선을 걸었다. 2006년 아베 내각에서 저출산 담당 장관(본인은 정작 자녀가 없는데),총무상 등을 역임했으며 자민당 내에서 강경 보수파로 불린다.
다카이치는 위구르 인권, 홍콩 독립, 대만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또 독도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한일관계에서도 강경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