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암 연구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50여 년 전 미국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당시 사회적 기대는 당장 몇 년 안에 암이 정복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는 암 퇴치가 원자폭탄 개발이나 달 착륙처럼 단기간의 과학적 도약으로 가능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기적의 치료법은 나오지 않았고, 암은 여전히 미국인의 40%가 생애 어느 시점에서 마주하게 되는 질병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의 축적된 연구 성과는 분명한 변화를 이끌어왔다. 1970년대 중반 49%에 불과하던 5년 암 생존율은 현재 68%로 높아졌다. 이는 꾸준한 연구 투자와 혁신 덕분이었다. 실제로 최근 국제학술지 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 실린 연구는 정부가 암 연구에 투자하는 326달러가 인간의 수명을 1년 연장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수십 년간의 연구는 생명을 구한 동시에 미국 사회와 경제에도 막대한 성과를 안겨준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적이었던 과학 연구 시스템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개월 사이 수억 달러 규모의 암 연구 지원금과 계약을 취소했으며, 추가 지원금의 지급도 중단하거나 연기했다. 정치적으로 추진된 다양성·형평·포용(DEI) 정책 개편의 일환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현장 연구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향후 예산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차기 회계연도 예산안은 국립암연구소(NIH) 예산을 기존 72억 달러에서 45억 달러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삭감 폭은 37% 이상으로, 물가를 고려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까지 연구비가 후퇴하는 셈이다. 실제로 정부는 연방 지원을 받아온 실험실의 보조금 비율을 크게 줄이고, 암 연구를 뒷받침해 온 수백 명의 정부 직원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는 이번 조치가 미국의 암 연구 기반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환자 치료 현장으로의 연구 성과 전달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 안팎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온 성과가 정치적 결정으로 한순간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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